2024. 5. 2.
두번째 월급을 받았다.
부업을 했다는 뜻이 아니다. 비캔에서의 시간이 한 달 더 흘렀다. 이 돈을 받을만큼 열심히 일했나-라고 생각하면, 그만큼의 만족스러운 퍼포먼스는 내지 못했던 것 같다. 주어진 일을 해내긴 했지만 일하는 방법에 익숙해지느라 공들인 시간이 길었다. 이제는 코어팀이 일하는 방식, 비즈니스 캔버스가 추구하는 방식이 이해가고, 손에 잡힐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직 프레임워크
사실 눈치를 많이 봤다. 첫 직장에서부터 텃세를 견디기도 했고, 인턴과 신입을 반복할 때와는 달리 경력이라는 무게가 자연스럽게 눈치보게 만들었다. 이직과 적응에 관련해서 많은 조언을 듣고 다녔는데, 다음 이직에는 더 빠른 적응을 위해 면접에서 더 자세히 콘텍스트를 파악하고, 섬세하게 조정하고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사하자마자 한 눈에 모두 좋은 사람들이라는 확신은 있었지만, 어디까지가 신규입사자를 위한 배려고 어디가 일반적인 상황인지를 파악해야했다. 하고싶은 대로 해라, 도전해라, 바꿔라라는 이야기를 듣고 ‘뭐야 진심인가?’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거 같은데, 고민의 시간이 무색하게도 스스로 만든 문제라는 걸 깨달았다. 그 기간동안은 내가 고민하는 문제를 아직은 터놓고 공유할 수 없어 조금은 괴로웠었다.
요즘 깨달았던 건 ‘회사니까’ ‘나보다 연차가 높고 똑똑한 사람이 많으니까’ 기대하고 의지했던 내 자신을 발견했다. 난 디자이너니까, 난 개인이니까, 난 연차가 낮으니까, 난 적응 중이니까 등 한계를 두고 핑계가 길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빠진 녀석같으니.
나보다 이전에 들어왔다는 신규입사자분들의 활약을 보고 좀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정말 그냥 하면 되는구나, 부족하면 내가 채우면 되겠구나, 생각보다 더 유연한 조직이구나, 내가 하는 것에 따라 바뀌는 회사구나.
오케이 이젠 적응 완료!(라고 생각하기)
무엇을 얻어갈까
비캔에서 가장 신기했던 점은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무엇을 얻어가고 싶냐’라는 질문을 쉽게 한다는 것이었다. 이제까지 생각했던 회사라는 조직은 각자 목적을 가지고 잠깐 같은 곳에 머문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맞지만, 그 때문에 서로의 바운더리를 넘지 않는다고 정해왔고 나 또한 그런 태도를 고수해왔다.
그래서 궁금해할 것이라고 생각도 못했고 입 밖으로 꺼내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현재 내 상태와 이 회사와 사람들을 이해하니 내가 어떤 것을 얻어갈 지 자연스럽게 몇 가지 보였던 것 같다.
없었던 소프트스킬 : 함께 일하는 법
해외인턴 때부터 첫 정규직, 사이드 프로젝트까지 이제껏 1인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혼자 일하는 일이 많았다.
그 장점을 최대로 흡수했을 때에 문제정의부터 해결까지 체계적으로 접근하는 법을 배우고, 솔루션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데이터-가설검증-실험 등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었다. 방법의 필요성을 곱씹으면서 천천히 진행할 수 있었고 달리다가 멈추는 등 완급조절이 가능했었다.
단점으로는 1인 디자이너인 내 경험은 근거가 되기 힘들었고, 공감대가 있는 현상에서 설득이 준비되어야 했다. 그러다보니 나도 모르게 준비에 준비를 더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달까. 주장하기 위해 스스로를 속이는 부분도 생기고, 확신을 가지기 힘들었던 거 같다.
아마 비캔에서는 함께 일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 같다. 문제가 되기 전에 공유하고, 함께 고민하고, 탓하지 않고 더 나은 걸 제안하는 문화에서 내가 다시 말랑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보면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지 않아도 일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덜 지치게 일하는 방법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된다.
부족했던 하드스킬 : UI디자인, 시각화
늘 내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을 나도 한 번 해보기로 결심했다. 문제를 해결해주면 돈을 내는 B2B 서비스에서 굳이 이런 점을 가져가겠다는 건 괜한 고집일 수도 있겠다. 그래도 UX와 떼어놓을 수 없는 UI 디자인, 못하진 않는다는 확신이 나에게 필요한 것 같다.
그냥 이 시점의 나에게 필요한 부분이다. 24년까지는 조금 집착해봐야지.
사람
오자마자 ‘어떻게 이 보석들이 한 곳에 모여있지?’라는 생각이 들을만큼 내적 동기부여가 강한 사람들이 많다. 그게 어떤 것일지는 각자는 다르겠지만 조화를 이루면서 추구하는 바를 얻어가는 것이 보인다. 나도 열정으로 치면 어딜가서 야망캐라는 얘기를 듣는데, 여기선 꽤 평범한 수준이다.
좋은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재밌는 걸 많이 해보고 싶다.